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즉 자존감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를 싫어하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결국 삶의 원동력을 잃게 만든다.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할 나 자신과 함께 행복할 수는 없을까? 내가 무너졌을 때 어떻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우선 자존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존감에 관한 책들은 참 많다. 읽고 싶은 책들도 많지만 예전에 읽다가 만 윤홍균 선생님의 ‘자존감 수업’에 마음이 자꾸 갔다. 이미 오래전 출간된 책이지만 자존감에 관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책이다.

자존감은 수영과 같다고 한다. 물속에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게 되는 것처럼 자존감도 무의식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저자 자신도 언젠가 자존감이 떨어질 때를 생각하여 글로 남긴다고 했다.
자존감이 떨어질 때는 언제일까? 아마 내 삶이 뜻대로 안 풀리고 나 자신이 마음에 안 들 때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못 느끼고 나아가 내 삶의 의미를 못 찾을 때이다.
그럴 때는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자기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노장사상에 의하면 사람의 가치는 그 쓸모와 효용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소위 세속적인 잣대로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나의 가치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뭐 어떠냐는 말로 나를 다독인다. 예민함과 완벽주의, 나를 괴롭히는 나의 잣대를 내려놓고 ‘~하면 어때 ‘ 와 같은 말을 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 좀 못 벌면 어때 ‘, ’ 못 생기면 어때 ‘ ’ 욕 좀 먹으면 어때 ‘ 등이다. 아무려면 돈도 명예도 없고 외모 또한 볼품없는 인생이라 해도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가는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나에게 하는 말에 꽤 신경 쓴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 또한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는 은연중 나 자신을 비난하고 채찍질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몰래하는 나 자신과의 대화가 나를 살리게 하거나 병들게 하기도 한다. 혹 다른 사람들은 나를 아프게 하는 말을 하더라도 나 자신만큼은 나를 북돋우는 말을 해야 한다.

저자는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을 자극과 함께 하는 나비의자기법을 소개한다.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양팔을 X자로 포개어 눈을 감고 왼쪽 오른쪽의 팔 윗부분을 교대로 두드린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괜찮아, 지금 잘하고 있어” “난 최선을 다했어. 그걸로 충분해 “ ” 난 괜찮은 사람이야 “ 등이다. 하루에 10분씩 하기를 권유하지만 몇 번만 해도 긴장이 좀 풀린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도 옆에 있는 누군가가 비난과 조종을 일삼는다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인정과 공감이다. 그들의 말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만 네가 한 대 때리면 나도 함께 때리겠다는 식으로 달려든다면 더 만신창이가 된다.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때렸는가 와는 상관없이 내가 맞은 10대는 나에게 10배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차라리 상대방을 누그러뜨려 10대 맞을 것을 한대만 맞고 끝내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공감해 주면 같은 주파수대의 감정이 상대방의 그것을 상쇄시켜 누그러뜨릴 수 있다. 대표적인 말로는 ‘그랬구나’, ‘~네가 그래서 이렇게 기분이 나빴구나.’ 등이다.

인간은 전두엽이 있기 전에 변연계가 먼저 있었다. 이성이 있기 전에 감정이 있었다. 이것을 무시해서는 진정한 인간성을 이룰 수 없다. 이성만 중시하면 소시오패스 등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그러기에 가끔은 모든 책임과 의무에서 해방되어 나의 창조력과 감성을 펼칠 수 있는 활동들을 한다면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모든 문화 예술 활동을 포함하여 나의 욕구에 귀 기울이는 일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이라도 당장 나 자신을 살리는 문구들을 만들어 수시로 들려줘보자. 작지만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