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기본은 타인에 대한 이해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바른 상황판단과 대처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인은 관계를 중시하고 ‘우리’라는 공동체 문화가 강하다.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가 쓴 “지혜로운 인간생활”에서 인간관계의 실마리를 풀어본다.
마음의 눈금 개수
같은 말을 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은 크게 마음 쓰지 않는 말을 어떤 사람은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사람마다 마음의 눈금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두 개나 세 개의 눈금밖에 없어서 어떤 일에 좋다 싫다 등 단순하게 판단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갈수록 눈금의 개수는 세분화된다. 그래서 좋다, 싫다에 더해 대체로 좋다, 정말 좋다, 무난하다, 아주 싫다 등 7개의 눈금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눈금의 개수가 많이 차이가 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나쁘지 않지만 조금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정도의 강도로 말했는데 눈금의 개수가 작은 사람 입장에서는 나쁘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눈금이 세분화될수록 더 이해의 폭이 넓고 성숙한 면모를 갖출 수 있다.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
예민한 사람과 둔한 사람은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다르다. 예민한 사람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다. 진실을 파헤치고 개선시킨다. 반면 둔한 사람은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제3의 차원으로 도약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일상적인 일이라면 너무 사사건건 예민하게 따지기보다는 변화적 이동에 기초한 동기를 가진 둔감한 사람의 해결 방식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라면 예민한 사람의 해결 방식인 조사적 이동에 기초한 동기에 따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뒷담화 하는 사람들
자꾸 남의 말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주장에 자신감이 없고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주장을 통해 자신의 의견에 확신을 가진다. 특별히 나의 말을 옮기고 다니는 사람은 나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 동질감은 사소한 것이나 말도 안 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내 말을 옮기고 다니는 것을 못하게 하려면 나에 대한 동질성을 없애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는 순댓국을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돼지고기를 못 먹어” 등과 같이 말한다.
이중인격자
상황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회사 내에서 다른 부서사람들이 있을 때는 매우 젠틀하다가 그들이 나가면 돌변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실 불안해하고 있다. 특히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감과 자만심이 높지만 자존감은 낮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지만 또한 구속과 소속감을 원한다. 만약 회사 안이라면 그들의 고립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강력한 리더가 있다면 가식적인 태도를 해소할 수 있다.
나와 관점이 다른 사람들
우리는 모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도 다르다. 예를 들어 본질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동양인은 원숭이, 판다, 바나나중 원숭이와 바나나를 비슷한 것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서양인은 같은 동물인 원숭이와 판다를 같은 부류로 분류한다. 기능론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나와 관점이 다른 사람들은 갈등할 수 있지만 필요한 존재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지만 도움이 되는 존재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행복과 이타성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한번 큰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감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큰 도움을 주는 한 사람보다 작은 도움을 기꺼이 주고자 하는 사람이 여러 명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 그리고 남에게 베풀고자 하는 이타적인 사람들은 더 번성해 왔다. 내가 누군가를 돕고자 할 때 창의적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 다시 나를 돕고 작은 행복을 주는 순환고리가 만들어진다.

인정욕구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정신발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악셀 호네트는 자신의 책 ‘인정 투쟁’에서 한 주체는 다른 주체에게 인정받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획득된 정체성으로 더 큰 인정으로 받으려 한다.
하지만 남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존감에는 기복이 있지만 그래도 평균치가 더 높은 사람들이 남들에게도 인정받는다. 인정의 다른 말은 ‘감탄’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감탄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감탄한다. 하지만 일과 관련된 상황에서 나 자신에게 감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1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과 상관없는 체험과 취미, 문화 활동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감탄을 만들고 나를 인정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각이 생각을 좌우한다
생각을 좌우하는 것이 뇌에서 신체로 옮겨간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질감, 온도, 물리적 거리 등을 이용한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야’ ‘그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야’ 등이다. 인간의 몸과 정신은 하나로써 서로 영향을 준다. 에이미 커디 박사의 ‘자세가 감정과 생각을 좌우한다 ‘는 이론은 적어도 심리적 효과가 있다. 즉 나를 긴장시키는 사람 앞에서 몸을 크게 만들면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 뇌는 햅틱, 즉 촉감의 뇌이다. 뭔가 만질 수 있는 물질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인간은 촉감을 통해 더 가깝게 느낀다. 그러기에 작은 물질이라도 나누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
나를 무시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아니면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정말 무시를 하는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방법으로는 우선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관계 개선을 위해 감사하다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만 동양에서는 ‘우리‘라는 감정을 건드리는 ’ 도와달라’는 말이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암묵적 관습에 대한 사회적인 경험 부족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거절하기를 해본다. 소시오패스의 경우 거절을 거절한다. 자신이 분명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그것을 계속 묵살한다면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분별해 내고 손절할지 관계 개선을 할지 정한다.
낙천적이기보다 낙관적
낙천적인 사람은 선천적으로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사람이다. 반면 낙관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잃지 않는다. 낙천적인 사람보다는 낙관적인 사람이 수명도 더 길고 건강하다. 또한 낙관적인 사람들이 행복의 총량이 낙천적인 사람보다 더 크다고 한다.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가 있다. 접근 동기는 더 좋아 보이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동기이고 회피 동기는 나쁜 일을 피하고자 하는 동기이다. 지난 100년 동안 70프로의 사람들은 접근 동기를 지지했고 30프로는 회피 동기가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동기가 더 적합한가는 시간이 기준이 된다. 장기적인 목표라면 사람들은 좋아 보이는 것을 하는 접근 동기를 택한다. 하지만 단기적인 목표라면 나쁜 것을 피하고자 한다. 보험에서 은퇴설계상품과 실손보험이 각각의 적절한 예이다. 또한 시간은 세대 간에 다르게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을 빠르게 느끼고 적을수록 느리게 간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어린 세대에게는 접근 동기로, 나이 든 분들에게는 회피 동기로 접근한다. 각각 올바른 동기를 건드리는 대화를 한다.
빠른 판단과 맹목적인 신뢰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의 속도가 신뢰를 높인다. 또한 맹목적인 신뢰가 지나친 낙관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부풀려진 낙관주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느리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비관적인 사람에게는 빠른 생각 회전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 빠르게 생각하고 직관하는 것에는 주의해야 한다.